토마스 선교사

선교사 토마스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최초로 순교한 사람은 영국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1840-1866)
입니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영국 런던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신학을 공부할 때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6년 만에 졸업장을 받았는데 이는 젊은 날에 잠시 방황했던 흔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곧 철저한 신앙과 선교의 열정으로 헌신을
다짐하며 선교사가 되었는데 그의 나이 스물 세 살 때인 1863년의 일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중국에서 사역하려고 상해(Shanghai)로 떠났습니다. 그 때 그의 각오는 이러했습니다. “나는 선교지에서 강인한 체력과 품격을 갖추고 외국어에 숙달된 인물이 필요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자기 부정의 정신을 가지고 이 선교의 길에
오르기로 한 것입니다..’ 그가 중국 상해에 도착한 후 본국 선교 본부에 보낸 첫 보고는 아내의 사망 소식이었습니다. 상해에 도착하
여 영국 선교부 사역지인 한구(한 커우시)를 둘러보려고 떠났는데 그 때 아내 캐롤라인은 몸이 안 좋아 동행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떠난 지 13일 만에 그의 아내는 낮선 땅에서 쓸쓸하게 죽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때 그들은 결혼한 지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영국을 떠날 때에는 여기서 처음 쓰는 편지가 이런 것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내 캐롤라인이 지난달(3월) 24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 이상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하겠습니다..’ 그 후 몇달 동안 외로움과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고생하다가 새로운 사역으로 변화를 꾀했는데 그것은 중국(청나라) 해상 세관의 통역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나름대로 선교적 확신을 가지고 추진한 일이었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선교 본부의 반응은 불신과 경멸이었습니다.

선교사로 파송된 사람이 현지에서 세관 직원으로 통역 일이나 하고 있다면 오해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리를 통해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가 북경에 있을 때 조선에서 온 동지사(쓰주, 조선에서 중국에 해마다 겨울에 보내는 사신) 일행을 만났는데, 그들과 두달 반을 같이 지내면서 조선의 천주교인들이 핍박을 당하는 사정도 알게 되었고, 상당한 한국말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조선으로 가는 미국의 상선 제너럴 셔먼호(General Sherman)를 타고 조선으로 떠났습니다. “나는 상당한 분량의 책들과 (한문)성경을 가지고 떠납니다. 조선 사람들에게 환영받을 생각을 하니 얼굴이 달아오르고 희망이 부품니다.”

토마스 선교사가 탄 배는 황해도를 거쳐 평안도 지방에 도착하여 순조롭게 성경을 나누어주며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오다가 평양에 도착할 무렵, 평양 감사인 박규수가 군인들을 이끌고 와서 그 배를 공격했습니다. 마침 썰물로 인하여 배가 모래 바닥에 박혀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고, 조선 군인들은 상류에서 땟목에 불을 붙여 떠내려 보내는 화공( 맛)으로 배를 불태워버려 선원 모두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도 백사장으로 끌려나와 참수되었는데, 그 때가 1866년 9월 2일, 그의 나이 27세 때입니다.

젊은이 토마스는 무엇을 위하여 풍요한 자기 조국 영국에서의 안일한 삶을 포기하고 존재도 몰랐던 조선 땅에 들어왔는지 생각할 수록 마음이 저립니다. – 백창남목사님 자료

‘한 알의 밀이땅에떨어져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